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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우리의 세 번째 교리 표준 문서는 도르트 신조인데, 이는 ‘항론파에 반대하는 다섯 조항’이라고 불린다. 이 신조는 1618~1619년에 도르트 개혁 대회에서 채택된 교리 문서이다. 이 총회는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대표자들로 구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외국 교회의 대표자 27명도 함께 참석한 국제적 규모의 총회였다. 도르트 총회는 알미니안 주의의 고조와 확산으로 일어난 개혁교회 내부의 심각한 혼란 때문에 개최되었다. 라이덴 대학의 신학 교수였던 아르미니우스(Arminius)와 그의 추종자들은 다섯 가지 중요한 요점에 관한 그들의 가르침에서 개혁 신앙을 이탈하였다. 그들은 예지된 믿음, 보편적 속죄, 부분적 타락, 저항할 수 있는 은혜, 그리고 은혜로부터 타락할 가능성에 근거를 둔 조건적 선택을 가르쳤다. 이와 같은 견해는 총회에서 반박되었고, 그 반대 견해는 오늘날 도르트 신조, 또는 항론파에 반대하는 다섯 조항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구체화되었다. 총회는 이 신조에서 무조건적 선택, 제한적 속죄, 전적 타락, 불가항력적 은혜, 그리고 성도의 견인이라는 요점으로 개혁 교리를 천명했다. 신조의 각 조항은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자에는 주제에 관한 개혁 교리의 해명이 있고, 후자에는 그 주제에 대응하는 알미니안의 오류에 대한 논박이 있다. 비록 그 구성에 있어서는 세 번째 부분과 네 번째 부분이 하나로 합해져서 네 장으로 되어 있다고 해도 우리는 다섯 신조라고 맞추어 말하며, 세 번째 장은 항상 제3, 4장으로 나타낸다. 우리 교회들의 모든 직분자들은 벨직 신앙 고백서와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과 마찬가지로 이 도르트 신조에도 서명할 것을 요구 받고 있다. 첫째 교리: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遺棄)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서 범죄하였고, 저주 아래 놓여 있으며, 영원한 죽음에 처해지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에,(롬5:12) 혹 전 인류를 죄 가운데와 저주 아래 버려두시며, 그 죄 때문에 그들을 정죄하시는 것이 그분의 뜻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불의를 행하신 것이 아닙니다. 사도들의 말씀은 이러합니다.“…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롬3:19),“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죄의 삯은 사망이니라.”(롬6:23) 제2항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심 그러나 이런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으니, 하나님께서 그분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셔서,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당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요일4:9; 요3:16) 제3항 복음의 설교 제4항 양면의 결과 제5항 불신앙의 원인, 믿음의 원천 다른 모든 죄들과 마찬가지로 불신앙에 대한 원인 또는 죄책도 결코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에게 있습니다.(히4:6)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그분으로 말미암은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이는 다음에 기록된 말씀과 같습니다.“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으니, 이것이 너희 자신의 행위가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하나님을 믿는 은혜를 주셨다.”(빌1:29) 제6항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 하나님께서 때를 맞춰 어떤 사람에게는 믿음의 선물을 내려주시며, 다른 사람에게는 주시지 않으시는 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 기인합니다.(행13:48, 벧전2:8)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영원으로부터 그분의 모든 사역을 아시기 때문입니다.“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엡1:11) 선택하신 자들이 아무리 완고하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이 작정에 따라 그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고, 또 믿음에 기울어지게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공정한 판단으로 선택되지 아니한 자들을 그들 자신의 악함과 완고함 가운데 내버려두십니다. 특별히 여기에서 그 심오함과 자비하심이 우리에게 드러나며, 동시에 동등하게 정죄 받아 마땅한 사람들 사이의 공정한 구별, 또는 하나님의 말씀에 계시된 선택과 유기의 작정이 드러납니다. 비록 사곡하고 불순하며 정함이 없는 사람들이 이 작정을 자신들의 파멸의 이유라고 왜곡한다고 해도, 이 작정은 거룩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영혼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위로를 줍니다. 제7항 한정된 작정 선택은 하나님의 불변하는 작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세상의 기초를 놓으시기 전에, 자신의 과오로 인해 원래의 완전한 상태에서 죄와 파멸로 타락한 전 인류로부터, 그분의 뜻에 의한 주권적인 선하신 기쁨에 따라, 오직 은혜로 제한된 수의 특정한 사람들을 선택하셨는데,(엡1:4,11)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선하거나 가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동일한 비참 가운데 있는 사람들입니다.(요17:2,12,24) 하나님께서는 또한 영원으로부터 그리스도를 모든 택자들의 중보자와 머리와 구원의 기초로 임명하셔서,(요17:2,12,24) 구원받을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 주실 것과 그분의 말씀과 성령으로 그분과의 교통에 그들을 부르시고 이끄실 것을 정하셨습니다.(요6:37,44; 고전1:9) 하나님께서는 그분에 대한 참된 믿음을 그들에게 주시고, 그들을 의롭게 하시며, 성결하게 하시고, 그분의 아들과의 교제 가운데 강건하게 지키시며, 마침내 그들을 영화롭게 하실 것을 작정하셨는데, 이는 하나님의 긍휼을 나타내며, 그분의 영광스러운 은혜의 부요함을 찬양하게하기 위함입니다. 이는 다음에 기록된 말씀과 같습니다.“곧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1:4-6)“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8:30) 제8항 선택에 대한 하나의 작정 이 선택에는 여러 가지 정이 있는 것이 아니고, 구약과 신약 하에 구원 받는 모든 사람들에 관한 하나이며 동일한 작정만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의 뜻에 속한 선하신 기쁨과 작정과 경륜이 하나라고 선언하기 때문입니다.(신7:7,9:6) 이 작정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영원으로부터 은혜와 영광, 구원의 길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이 구원의 길은 우리가 그 안에서 걸어가야 하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것입니다.(엡1:4,5;2:10) 제9항 예지된 믿음에 근거하지 않은 선택 이 선택은 선택받기 위해 요구되는 사람의 원인이나 조건과 같은 예지된 믿음, 믿음의 순종, 거룩함, 또는 어떤 다른 선한 자질이나 품성에 근거하지 않고, 사람이 믿음, 믿음의 순종, 거룩함 등에 이르도록 선택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택은 모든 구원에 이르는 선(善)의 원천입니다.(롬8:30) 이 선택으로부터 믿음, 거룩함, 다른 구원의 은사들이 나오며, 선택의 열매와 결과로서 마침내 영원한 생명이 나옵니다. 이것에 대해 사도는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우리의 어떠함 때문이 아니라)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1:4) 제10항 하나님의 선하신 기쁨에 기초를 둔 선택 이 은혜로운 선택의 원인은 오직 하나님의 선하신 기쁨입니다. 이 선하신 기쁨은 하나님께서 모든 가능한 조건들로부터 구원을 위한 조건으로서 사람의 어떤 자질이나 행위를 선택하신 것에 있지 않고, 그분께서 보통의 많은 죄인들 중에서 특정한 사람들을 그분 자신의 소유로 양자 삼으셨다는 것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창25:23)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말1:2,3)하심과 같으니라.”(롬9:11-13)“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13:48) 제11항 불변하시는 선택 하나님 그분께서 가장 지혜로우시며, 불변하시며, 전지(全知)하시며, 전능하신 것같이, 그분의 선택도 또한 취소되거나 고쳐지거나 변하거나 철회되거나 무효화될 수 없으며, 또한 택자들도 버림받거나 그 수가 감소될 수 없습니다. (요6:37;10:28) 제12항 선택의 확신 비록 단계가 다양하고 정도가 다를지라도, 택자들은 때가 되면 구원에 이르는 영원하고 불변하는 선택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이 선택의 확신을 얻는 것은 하나님께서 숨기신 은밀한 것들을 호기심으로 들여다봄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기쁨과 거룩한 즐거움으로 하나님께서 말씀에 지시하신 선택의 확실한 열매들, 곧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믿음, 하나님에 대한 어린아이와 같은 경외심, 자신들의 죄에 대한 경건한 슬픔, 의에 주리고 목마름 등과 같은 것들을 자신에게서 살핌으로 얻습니다.(신29:29; 고전2:10,11; 고후13:5;7:10; 마5:6) 제13항 이 확신의 가치 이 선택에 대한 깨달음과 확신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들은 날마다 그들 자신을 하나님 앞에 겸비케 하고, 그분의 깊으신 긍휼을 경배하며, 그들 자신을 정결케 하고, 그들을 먼저 지극히 사랑하신 그분을 쉼 없이 열렬히 사랑하기 위한 더 큰 이유를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선택의 교리와 이 교리에 대한 숙고(熟考)가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함에 있어 그들을 나태하게 하거나 거짓된 안정감을 가져온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가운데 이런 일은 선택의 은혜를 가졌다고 경솔하게 추정하는 사람들, 또는 그것에 대하여 헛되고 무뢰하게 지껄이지만 택자들의 길로 걷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서 종종 일어납니다. (요일3:3; 요일4:19) 제14항 선택이 가르쳐져야 하는 방법 하나님의 지극히 지혜로우신 경륜에 따라, 이 신성한 선택의 교리는 신약뿐만 아니라 구약에서 선지자들과 그리스도 자신, 그리고 사도들에 의해 선포되었으며, 성경에 기록되도록 위임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이 교리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가르쳐져야 합니다.(행20:27) 이 교리는 분별의 영이 역사하시는 적절한 시간과 장소에서, 지존하신 분의 방법을 호기심으로 들여다보지 않는 경건하고 거룩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지극히 거룩하신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고 그분 백성의 살아있는 위로를 위하여 특별히 만들어졌습니다.(욥36:23-26; 롬11:33;12:3; 고전4:6) 제15항 선언된 유기 성경은 우리의 선택에 대한 이 영원하고 과분한 은혜를 우리에게 설명하며 권고합니다. 특별히 그것에 더하여 모든 사람이 선택 받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은 선택 받지 못했거나 또는 하나님의 영원한 선택에서 제외되었다는 것을 선언할 때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지극히 자유롭고 의로우며 무흠하며, 불변하시는 선하신 기쁨으로, 그들 자신의 죄로 인해 스스로 일반적인 비참에 빠져 있는 자들을 내버려두시고, 구원의 믿음과 회심의 은혜를 그들에게 주시지 않을 것을 작정하셨습니다.(롬9:22; 벧전2:8)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공의를 나타내시기 위하여 그들 자신의 길에서 떠나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아래 있는 이 사람들을 그들의 불신앙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죄악 때문에 영원히 정죄하시고 형벌하시기로 결정적으로 작정하셨습니다.(행14:16) 이것이 유기의 작정인데, 이 작정은 하나님을 결코 죄의 조성자로 만들지 않으며,(이 생각이야말로 신성모독입니다.) 오히려 그분을 두렵고, 흠이 없고, 의로우신 재판장과 보수자로 선언합니다. 제16항 유기의 교리에 대한 응답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살아있는 믿음, 마음의 확고한 확신, 양심의 평안, 어린아이와 같은 순종에 대한 열심,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 안에서의 영예로움을 그들 스스로 아직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이런 은덕들을 일으키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으므로, 그 방편들을 이미 사용하고 있습니다. (약2:26; 고후1:12; 롬5:11; 빌3:3) 그들은 유기가 언급될 때에 불안해하지 말아야 하며, 그들 스스로 유기된 사람들 중에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그들은 이러한 방편들을 부지런히 계속해서 사용해야 하며, 더욱 풍부한 은혜의 때를 열렬히 갈망해야 하고, 경외와 겸손으로 고대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께로 회심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하며, 사망의 몸에서 구원 받기를 진지하게 열망합니다.(롬7:24)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바라는 경건과 믿음의 길에 있는 그 지점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들은 유기의 교리 때문에 훨씬 덜 두려워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자비의 하나님께서는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고,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사42:3; 마12:20) 제17항 유아기에 죽은 신자의 자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판단해야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신자의 자녀가 본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의 부모와 함께 포함된 은혜 언약의 덕택으로 거룩하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부모들은 하나님께서 유아기에 이생에서 불러 가신 자녀의 선택과 구원을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창17:7; 사59:21; 행2:39; 고전7:14) 제18항 항의가 아닌 찬양 과분한 선택의 은혜와 의로우신 유기의 엄중(嚴重)함에 대하여 불평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사도들의 말씀으로 대답합니다.“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욥34:34-37; 롬9:20) 그리고 우리 구주의 말씀으로 대답합니다.“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마20:15) 오류에 대한 반박 총회는 선택과 유기에 대한 참된 교리를 해명하고, 다음의 오류들을 반박합니다. 1 반박 : 이 오류는 속임수이며, 성경의 가르침과 명백하게 반대됩니다. 성경은 하 나님께서 믿는 자를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영원으로부터 특정한 사람들을 선택하셨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적정한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런 택자들에게 다른 사람들과 달리 특별히 그리스도 안에서의 믿음과 견인을 허락하십니다.“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요17:6)“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13:48)“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1:4) 2 3 반박 : 이런 무례한 오류는 하나님의 선하신 기쁨과 그리스도의 모든 공효에 대한 공로를 박탈하며, 은혜로운 칭의의 진리와 성경의 단순성으로부터 사람을 분리시킵니다. 그러한 주장은 다음과 같은 사도의 교훈과 반대됩니다.“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1:9) 4 5 6 반박 : 이 엄청난 오류는 하나님을 변덕스러운 분으로 만들며, 신자들이 그들의 선택에 대한 확신으로부터 얻는 위로를 파괴하고,“택자들은 미혹될 수 없다.(마24:24)”는 성경 말씀과 반대됩니다. 7 반박 : 불확실한 확신에 관하여 말한다는 것은 불합리할 뿐만 아니라 신자들의 경험과도 반대됩니다. 자신들의 선택에 대한 인식의 결과로 신자들은 사도들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에 영광을 돌립니다.(엡1장) 또한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함께 자신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기뻐합니다. (눅10:20) 또한“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롬8:33)라고 외쳐 말할 때에 택자들은 자신들의 선택에 대한 자의식으로 사단의 화전을 막습니다. 8 9 반박 :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 이런 오류를 부인합니다.“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여호와께서 오직 열조를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 후손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날과 같으니라.”(신10:14,15) 또한 그리스도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마11:21) 둘째 교리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그 죽으심을 통한 사람의 구속 제1항 하나님의 공의가 요구하는 형벌 제2항 그리스도에 의해 이루어진 속죄 하지만 우리 스스로 이 속죄를 이룰 수 없으며,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우리 자신을 자유롭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무한하신 긍휼로 우리의 보증인으로 그분의 독생하신 아들을 주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또는 우리를 대신하여 그분은 십자가 위에서 죄와 저주를 받으셨는데, 이는 우리를 대신하여 속죄를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요3:16; 롬5:8; 고후5:21; 갈3:13) 제3항 그리스도의 죽음의 무한한 가치 이러한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은 죄에 대한 유일하고 가장 완전한 희생 제사이고 속죄이며, 온 세상의 죄를 속죄(보상)할 만큼 넘치도록 충분하고 무한한 값과 가치가 있습니다.(히9:26,28;10:14; 요일2:2) 제4항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무한한 가치를 가지는 이유 죽기까지 복종하신 그분이 참되고 완전히 거룩하신 분이실 뿐만 아니라, 성부와 성령과 함께 동일하고 영원하며 무한한 본질에 속하신 독생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이 죽음은 가장 위대한 값과 가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자격들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기 위하여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히4:15;7:26; 요일4:9) 더 나아가 우리의 죄로 인해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의 의미가 그 죽음에 수반되었기 때문에 이 죽음이 그처럼 큰 값과 가치가 있습니다.(마27:46) 제5항 복음의 보편적인 선포 복음의 약속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누구나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을 것이라는 것입니다.(요3:16) 이 약속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선하신 기쁨으로 복음을 보내시는 모든 민족과 모든 사람들에게 회개하고 믿으라는 명령과 함께 보편적으로 차별 없이 전파되고 선포되어야 합니다.(고전1:23; 마28:19; 행2:38;16:31) 제6항 어떤 사람들이 믿지 않는 이유 하지만 복음으로 부름 받은 사람들 중 많은 사람이 회개하지도 않고, 그리스도를 믿지도 않으며, 불신앙 가운데 멸망하는 것은(마22:14) 십자가 위에서 드리신 그리스도의 희생에 어떤 흠이나 부족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 자신의 잘못 때문에 일어납니다.(시95:11; 히4:6) 제7항 다른 사람들이 믿는 이유 그러나 진실로 믿고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그 자신들의 죄로부터 해방되어 멸망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이 은덕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으로부터 그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만 옵니다.(고후5:18; 엡2:8,9) 하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이 은혜를 빚지지 않으십니다. 제8항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공효(功效) 왜냐하면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의 가장 보배로운 죽음의 생명을 주시고 구원하시는 공효가 모든 택자들에게 미쳐야 한다는 성부 하나님의 지극히 자유로우신 경륜이었기 때문입니다.(요17:9; 엡5:25-27) 오직 택자들에게만 의롭다 하시는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으로 그들을 확실히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가장 은혜로운 뜻과 의도였습니다. 이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께서 새 언약을 확증하신) 십자가의 피를 통해(눅22:20) 모든 민족, 족속, 나라, 어족(語族)으로부터 모든 택자들, 곧 영원으로부터 구원으로 택함 받고 아버지께서 그분에게 주신 자들만을 효과적으로 구속하시기를 뜻하셨습니다.(히8:6; 계5:9) 더욱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다른 구원의 선물들과 함께 그분의 죽으심으로 택자들을 위해 획득하신 믿음을 그들에게 주시고,(빌1:29) 그분의 피로 모든 죄, 곧 원죄와 자범죄, 믿고 난 후에 지은 죄와 믿기 전에 지은 모든 죄로부터 택자들을 정결케 하시며,(요일1:7) 택자들을 세상 끝날까지 신실하게 지키셔서, 마침내 아무런 티나 주름 잡힌 것 없이 영광 중에 그분 앞에 나타나게 하시기를 뜻하셨습니다.(요10:28; 엡5:27) 제9항 하나님의 경륜의 성취 택자를 위한 영원한 사랑에서 비롯된 이 경륜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강력하게 성취되어 왔으며, 또한 아무리 음부의 권세가 그 경륜을 좌절시키려고 헛되이 시도한다 할지라도 계속 성취될 것입니다.(마16:18) 때가 차면 택자들은 다 함께 하나로 모이고, 그리스도의 피 위에 세워진 신자들의 교회가 거기에 항상 있을 것입니다.(요11:52; 왕상19:18) 이 교회는 그리스도를 교회의 구주로(그리스도께서는 신부를 위하여 목숨을 주는 신랑처럼 교회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생명을 주셨습니다.) 변함없이 사랑하며, 신실하게 섬기고, 지금 그리고 영원무궁토록 그분을 찬송할 것입니다.(엡5:25) 오류에 대한 반박 총회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이 죽음으로 인한 사람의 구속에 대한 참된 교리를 해명하고, 다음의 오류들을 반박합니다. 1 반박 : 이 교리는 성부의 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공격하며, 성경에도 반대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구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나는 저희를 알며”(요10:15,27) 또한 선지자 이사야는 구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그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사53:10) 마지막으로 이 오류는 보편적인 그리스도의 교회에 관한 신조(信條)에 반대됩니다. 2 3 반박 : 이 오류를 가르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아주 가볍게 생각하고, 그리스도의 죽음의 가장 중요한 열매와 유익을 전혀 인정하지 않으며, 지옥으로부터 펠라기우스의 오류를 가져옵니다. 4 반박 : 이 교리는 다음의 성경 말씀에 반대됩니다.“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롬3:24,25) 이 오류를 가르치는 사람들은 불경건한 소시누스처럼 보편 교회의 합의된 입장에 반대하여 하나님 앞에서 사람에 대한 생소한 칭의론을 주장합니다. 5 반박 : 이 견해는 우리가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라고 가르치는 에베소서2:3의 성경 말씀과 상충됩니다. 6 반박 : 이런 교리를 가르치는 사람들은 구원의 획득과 적용 사이의 차이점을 오용하여, 분별이 부족하고 미숙한 사람들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그들은 건전한 의미에서 이런 차별을 제시하는 것같이 가장하지만, 실상은 펠라기우스주의의 치명적인 독소를 사람의 마음에 스며들게 하려는 것입니다. 7 반박 : 이런 교리는 사도들의 가르침과 반대됩니다. 사도들은 다음과 같이 선포합니다.“하나님의 아들들이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셨다.”(갈2:20) 이와 마찬가지로“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이시다.”(롬8:33,34) 또한 구주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확증하십니다.“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10:15) 그리고“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15:12,13)라고 하셨습니다. 셋째와 넷째 교리 사람의 부패, 하나님께로의 회심, 그리고 그것이 일어나는 방식 제1항 타락의 결과 태초에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습니다.(창1:26,27) 사람은 자신의 창조주와 모든 영적인 일들에 대한 참되고 온전한 지식으로 그의 지성이 꾸며져 있었습니다. 곧 사람의 의지와 마음은 정직했고, 모든 감정은 순수했으므로 사람은 완전히 거룩했습니다. 제2항 부패의 전파 타락한 후에 사람이 부패하게 되어 부패한 아비로서 부패한 자녀를 낳았습니다.(욥14:4; 시51:7; 롬5:12) 그렇게 부패는 아담으로부터 오직 그리스도를 제외한 아담의 모든 후손에게로 확산되었습니다.(히4:15) 이는 옛날의 펠라기우스가 주장한 것처럼 모방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에 따라 패역한 본성의 번식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제3항 사람의 전적인 무능력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죄 가운데 잉태되어 진노의 자녀로서 태어납니다.(엡2:1,3; 요8:34; 롬6:16,17) 그들은 자기를 구원할 어떤 선도 행할 수 없고 악에 기울어지며 죄 가운데 죽어있는 죄의 종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중생하게 하시는 성령의 은혜가 없이는 하나님께로 돌아오거나 그들의 타락한 본성을 개혁하거나 타락한 본성을 스스로 개혁하려고 하지도 않으며 할 수도 없습니다.(요3:3-6; 딛3:5) 제4항 본성의 빛의 불충분성 분명히 사람이 타락한 후에도 사람에게 본성의 빛이 조금은 남아 있어서, 그것으로 하나님에 대해, 만물에 대해, 그리고 명예로운 것과 수치스러운 것의 차이에 대해 어느 정도의 관념을 보유하고 있으며, 덕성과 외적인 질서에 대해 어느 정도의 존중을 나타냅니다.(롬1:19,20;2:14,15) 그러나 사람은 자연계의 문제와 사회적 문제에서조차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이 본성의 빛으로는 하나님에 대한 구원 지식과 참된 회심에 도저히 도달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이 본성의 빛이 무엇이든지 사람은 그 빛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전면적으로 오염시키고 있으며, 사람의 사악함으로 이 빛을 억제하고 있습니다.(롬1:18,20) 그렇게 행하므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변명할 수 없게 만듭니다. 제5항 율법의 불충분성 본성의 빛에 대하여 주장하는 바는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유대인에게 특별히 주신 십계명에도 적용됩니다. 왜냐하면 비록 십계명이 죄의 중대성을 드러내며, 사람의 유죄를 더 분명하게 입증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사람에게 구제책을 제시하지 못하며, 이 죄의 비참으로부터 회복할 힘을 주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롬3:19,20;7:10,13) 오히려 육체로 인해 약해진 계명은 범죄자들을 저주 아래 방치합니다.(롬8:3) 그러므로 사람은 율법을 통해 구원의 은혜를 얻을 수 없습니다. (고후3:6,7) 제6항 복음에 대한 필요 따라서 본성의 빛이나 율법으로는 행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옛 경륜과 새 경륜의 시대에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시는 메시야의 복음(고전1:21)인 화목의 말씀, 또는 화목케 하는 사역을 통한 성령의 능력으로 이행하고 계십니다.(고후5:18,19) 제7항 복음이 어떤 사람에게는 전해지고 다른 사람에게는 전해지지 않는 이유 구약 경륜 하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그분의 뜻의 비밀을 소수에게만 계시하셨습니다. 하지만 신약의 경륜 하에서 그분은 민족들 사이의 차별을 거두시고 다수의 민족에게 계시하셨습니다.(엡1:9;2:14; 골3:11) 복음이 바로이렇게 전파된 이유는 한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 가치가 높거나 본성의 빛을 더 잘 사용해서가 아니라,(롬2:11)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선하신 기쁨과 과분한 사랑에 기인합니다.(마11:26) 그러므로 마땅히 받아야 할 모든 하나님의 진노와 정반대로 그 이상의 심히 큰 은혜를 허락받은 우리는 겸손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은혜를 받지 못하는 다른 사람에 대하여 우리는 사도들과 함께 하나님의 공의의 엄중하심과 의로우심을 찬미해야 하며, 결코 호기심으로 그것들을 파고들어서는 안 됩니다.(롬11:22,23; 계16:7; 신29:29) 제8항 복음에 의한 진실한 부르심 하지만 복음을 통해 부르심을 입은 많은 사람들은 진정으로 부르심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진정으로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것, 즉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 그분에게 와야 한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그리고 가장 신실하게 그분의 말씀 안에 계시하시기 때문입니다.(사55:1; 마22:4; 계22:17; 요6:37)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분에게 와서 믿는 모든 사람에게 영혼을 위한 안식과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을 진정으로 약속하십니다.(마11:28,29) 제9항 부르심을 입은 몇몇 사람들이 나아오지 않는 이유 복음의 사역을 통해 부르심을 입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나아오거나 회심하지 않는 것은 복음의 결함 때문이거나 복음으로 제시된 그리스도의 결함 때문이거나 복음을 통하여 부르시고 심지어 그들에게 여러 가지 은사까지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결함 때문이 아닙니다. 그 결함은 그들 자신에게 있습니다.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 중 어떤 사람은 생명의 말씀에 관심을 가지지도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말씀을 정말 받아들이지만, 마음 속 깊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일시적인 믿음의 기쁨이 사라지고 나면 본래대로 돌아가 버립니다. 또 다른 사람들도 염려의 가시와 이생의 쾌락으로 말씀의 씨를 눌러서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하게 합니다. 이 교훈을 우리 구주께서는 마태복음 13장의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가르치십니다.(마11:20-24;22:1-8;23:37) 제10항 부르심을 입은 다른 사람들이 나아오는 이유 복음의 사역을 통해 부르심을 입은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께 나아와서 회심하게 됩니다. 이것은 사람에 기인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펠라기우스에 속한 거만한 이단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믿음이나 회심을 위해 동등하거나 충분한 은혜를 부여받은 다른 사람들 그 이상으로 자기 자신을 자유 의지에 따라 구별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기인한 것입니다.(롬9:16) 하나님께서는 영원으로부터 그리스도 안에 그분의 소유를 선택하셨고, 그들을 시간 안에서 효과적으로 부르십니다. 그분은 그들에게 믿음과 회개를 주십니다. 그분은 그들을 흑암의 권세로부터 구원하시고, 아들의 왕국으로 옮기십니다.(골1:13; 갈1:4) 성경 여러 곳에서 사도들이 증언한 대로, 그들이 흑암으로부터 기이한 빛 안으로 그들을 부르신 그분의 놀라운 행위를 선포하며, 그들 자신이 아니라 오직 주님만을 자랑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일을 이루고 계십니다.(벧전2:9; 고전1:31; 고후10:17; 엡2:8,9) 제11항 하나님께서 회심을 일으키시는 방법 하나님께서는 택자들 가운데 그분의 선하신 기쁨을 행하시고, 그들 안에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참된 회심을 일으키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이 그들에게 전파되도록 돌보시고, 성령으로 그들의 지성을 강력하게 조명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바르게 이해하고 분별하게 하십니다.(히6:4,5; 고전2:10-14) 또한 하나님께서는 중생케 하시는 동일한 성령의 효과적인 사역으로 사람의 마음을 깊이 감동시키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닫힌 마음을 여시며,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고, 할례 받지 못한 마음에 할례를 베푸시며, 새로운 자질을 그 의지에 스며들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었던 의지를 소생시키시며, 악했던 의지를 선하게 하시며, 비자발적인 의지를 자발적이 되게 하시며, 완고한 의지를 순종하는 의지가 되게 하십니다.(히4:12; 행16:14; 신30:6; 겔11:19;36:26) 하나님께서는 의지를 움직이시고 강하게 하셔서, 좋은 나무처럼 선행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하십니다.(마7:18) 제12항 중생은 오직 하나님의 사역이다. 이 회심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위와 상관없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신다고 성경에서 강조하여 말했던 그 중생이고, 새로운 창조이며, 죽은 자로부터 일어나는 것이고, 살리는 것입니다.(요3:3; 고후4:6;5:17; 엡5:14) 그러나 이 중생은 단지 외적인 가르침이나 도덕적인 설득으로, 또는 하나님께서 자기편에서 하실 일을 다 하신 후에 중생하게 되거나 중생하지 않게 되는 것, 회심하게 되거나 회심하지 않게 되는 것이 사람의 능력에 달린 그런 방식으로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중생은 확실히 초자연적이며 초월적 능력이며, 동시에 가장 기쁘고 기이하고 신비롭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사역입니다. 이 사역의 창조자에 의해 영감된 성경에 따르면, 중생은 권능에 있어서 창조나 죽은 자의 부활에 비해 열등하지 않습니다.(요5:25; 롬4:17)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 경이로운 방식으로 마음에 역사하시는 모든 사람들은 확실히, 틀림없이, 그리고 효과적으로 중생하며, 실제적으로 믿습니다. 그리고 그때 그렇게 새롭게 된 의지는 하나님에 의해 작용되며 감동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작용된 그 의지 자체로 움직입니다. 그러므로 사람 자신이 그가 받은 은혜를 통해 믿고 회개한다는 말은 바른 말입니다.(빌2:13) 제13항 중생은 불가해(不可解)한 것이다. 이생에서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이 중생의 일을 행하시는 방식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요3:8) 하지만 한편으로 중생자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주를 마음으로 믿고 사랑한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경험합니다.(롬10:9) 제14항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이 되는 방식 그러므로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하나님에 의해 사람의 자유 의지에 단순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사람에게 베풀어지고, 사람 안으로 스며들고, 불어 넣어지기 때문입니다.(엡2:8) 믿음이 선물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단지 믿을 수 있는 능력만 베푸시고, 그런 다음 사람의 자유 의지로부터 믿는다는 동의나 믿음의 행위를 기다린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의지와 행위 모두에 역사하시며, 참으로 만유 중에 만유이신 하나님께서 믿으려는 의지와 믿음의 행위 둘 다를 사람 속에 일으키신다는 의미입니다.(빌2:13) 제15항 하나님의 과분한 은혜에 대한 올바른 태도 하나님께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이 은혜를 빚지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무엇을 빚질 수 있겠습니까? 누가 하나님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죄와 거짓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에게 무엇을 빚질 수 있겠습니까?(롬11:35) 그러므로 이 은혜를 받는 사람은 오직 하나님께만 빚을 지고 있는 것이며, 오직 그분께만 영원한 감사로 보답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은혜를 받지 않은 사람은 이런 영적인 일들에 대하여 전혀 관심이 없으며 자기가 가진 것으로 즐거워하거나, 거짓된 안정감 속에서 그가 가지지 않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헛되이 자랑합니다.(암6:1; 렘7:4) 덧붙여 말하면 우리는 외적으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며 생활을 개선하는 사람들에 대해 사도들의 예를 따라 가장 호의적인 방법으로 판단하고 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마음 속 깊은 곳은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롬14:10) 우리는 아직 부름 받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 그들을 위하여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롬4:17) 하지만 우리는 그들로부터 우리 스스로 구별된 것처럼 결코 오만하게 행동하지 말아야 합니다.(고전4:7) 제16항 제거된 것이 아니라 살아난 사람의 의지 타락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지성과 의지를 부여받는 사람이 되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즉 전 인류에 퍼진 죄가 사람에게서 인간적인 본성을 박탈한 것이 아니라 부패와 영적인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또한 이 하나님의 중생의 은혜도 사람에게 마치 그들이 나무토막이나 돌인 것처럼 작용하지 않으며, 의지와 의지의 특성을 제거해 버리거나 폭력적으로 억압하지도 않고, 반대로 그 의지를 영적으로 살아나게 하며, 치료하고, 교정하며, 즐겁게 하면서도 강력하게 굴복시킵니다.(롬8:2; 엡2:1) 결과적으로 이전에는 육체에 속한 반역과 반항이 완전히 지배했다면, 이제는 성령에 속한 신속하고 신실한 순종이 우세해지기 시작합니다. 거기에 우리 의지의 참되고 영적인 소생과 자유가 있습니다. 만약 모든 선(善)의 놀라운 조성자께서 우리를 이러한 방법으로 상대하지 않으셨다면, 사람은 그가 아직 서 있다고 할 때에 스스로를 파멸에 던졌던 이 자유 의지 때문에 자신의 타락에서 일어설 소망이 없었을 것입니다.(시51:12; 빌2:13) 제17항 방편의 사용 우리의 이 자연적인 생명을 태어나게 하시고 유지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역사는 방편들의 사용을 배제하지 않으시고 요구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무한한 지혜와 선(善)에 따라 그 방편들로 그분의 능력을 실행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앞서 말한 대로 우리를 중생케 하시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는 지극히 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중생의 씨와 영혼의 양식이 되도록 정해 놓으신 복음의 사용을 결코 배제하거나 소용없게 하지 않습니다.(사55:10,11; 고전1:21; 약1:18; 벧전1:23,25;2:2) 이런 이유 때문에 사도와 그들을 계승한 교사들은 하나님의 이 은혜에 관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고 모든 오만을 낮추기 위하여 그 백성을 경건하게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복음의 거룩한 권면으로 말씀과 성례와 권징의 시행 하에 자신들을 지키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행2:42; 고후5:11-21; 딤후4:2) 그래서 오늘날 교회에서 교훈을 주거나 받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선하신 기쁨 가운데 밀접하게 함께 결합되게 하시려는 것을 나누므로 하나님을 감히 시험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롬10:14-17) 왜냐하면 은혜는 권면을 통해 베풀어지며, 우리가 우리의 사명을 더욱 기꺼이 수행하면 할수록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이 은총이 더욱더 그 광채 가운데 스스로 분명하게 드러나서 그분의 사역이 가장 잘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그 방편들과 그것들의 구원하는 열매와 공효에 대하여 오직 하나님께만 모든 영광이 영원히 돌려져야 합니다.(유1:24,25) 아멘. 오류에 대한 반박 총회는 사람의 부패에 대한 참된 교리와 하나님께로의 회심에 대한 참된 교리를 해명하고, 다음의 오류를 반박합니다. 1 반박 : 이 말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 사도의 말씀에 반대됩니다.“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5:12)“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롬5:16)“죄의 삯은 사망이오.”(롬6:23) 2 반박 : 이 오류는 사도가 에베소서4:24에서 보여준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서술에 반대됩니다. 사도가 하나님의 형상을 의와 거룩과 연관시켰다면 그것은 의심할 바 없이 의지에 속한 것입니다. 3 반박 : 이 주장은 생소한 이론이며 오류이고, 자유 의지에 대한 능력을 격찬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주장은 선지자 예레미야가 예레미야 17:9에서“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라고 말한 것에 반대됩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전에는 우리도 다 그(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엡2:3) 4 반박 : 이 주장은 다음과 같은 성경 말씀의 분명한 증거와 반대됩니다.“너희는 허물과 죄로 죽었다.”(엡2:1,5) 그리고“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셨다.”(창6:5;8:21) 또한 오직 중생한 사람과 부르심을 입은 사람만이 비참으로부터의 구원과 생명에 주리고 목말라 하는 복을 받으며, 상한 심령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립니다.(시편51:19; 마5:6) 5 반박 : 모든 시대의 경험 뿐 아니라 성경에서도 이런 주장이 진실하지 않다는 것을 증언합니다. 6 반박 : 이런 가르침은 성경에 반대되는데, 성경은 하나님께서 믿음, 순종, 그리고 그분의 사랑을 자각하는 것에 대한 새로운 자질을 우리 마음속에 불어 넣으신다고 선언합니다. 즉“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할 것이라.”(렘31:33)“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할 것이라,”(사44:3)“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되었다.”(롬5:5)라고 하셨습니다. 7 반박 : 이런 주장은 전적으로 펠라기우스파에 속한 것이며, 성경 전체와 반대됩니다. 성경은 이런 도덕적인 설득 이상의 다른 것, 곧 사람의 회심에서 성령의 역사에 속한 보다 더 능력 있고 신적인 방식을 가르칩니다.“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다.”(겔36:26) 8 반박 : 이와 같은 주장은 사람의 회심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의 모든 공효를 부인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사람의 의지에 종속시키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사도들의 가르침과도 반대됩니다. 사도들은 우리가“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엡1:19) 믿는다고 가르치며,“우리 하나님께서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기를 기도하며(살후1:11),“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라고(벧후1:3) 선언합니다. 9 반박 : 고대 교회는 오래 전에 사도들의 말씀을 따라 펠라기우스파의 이런 교리를 정죄하였습니다.“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9:16)“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고전4:7)“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느니라.”(빌2:13) 다섯째 교리 성도의 견인(堅忍) 제1항 중생한 사람도 내재하는 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작정에 따라 그분의 아들,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제 안으로 부르시고 성령으로 중생하게 하신 사람들을 죄의 지배와 노예 상태로부터 확실히 자유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이생에서 죄된 육신과 몸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게 하신 것은 아닙니다.(요8:34; 롬6:17;7:21-24) 그러므로 매일 연약함에 속한 일상적인 죄들이 솟아나고, 심지어 성도의 가장 선한 행위에도 결점들이 들러붙어 있습니다.(요일1:8) 이 죄와 결점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을 낮추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께 피하며, 기도의 영을 통해, 그리고 경건의 거룩한 연단으로 육신을 더욱더 죽이며, 마지막 날까지 완전의 목표를 향해 갈망하며 싸워야 할 변치 않는 이유가 됩니다.(골3:5; 딤전4:7; 빌3:12,14) 그 마지막 날에 성도들은 이 죽음의 몸에서 구원될 것이며, 하늘에서 하나님의 어린 양과 함께 왕 노릇할 것입니다.(계5:6,10) 제3항 하나님께서 그분의 소유된 백성을 보호하신다. 이러한 내재하는 죄의 찌꺼기와 세상과 사단의 유혹 때문에 이미 회심한 사람들이라도 그 자신의 힘에만 머물러 있다면 그 은혜 안에 서 있을 수 없습니다.(롬7:20) 그러나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그분은 자비롭게도 한 번 그들에게 베푸신 은혜 안에서 그들을 굳세게 하시며, 그들을 그 은혜 안에 끝까지 강력하게 보호하십니다.(고전10:13; 벧전1:5) 제4항 성도들도 심각한 범죄에 빠질 수 있다. 참 신자를 은혜 안에 굳세게 하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매우 커서 육체에 의해 정복될 수 없을지라도, 회심한 사람들도 항상 하나님에 의해 인도되고 감동되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특별한 행위에 있어서 그들 자신의 잘못 때문에 은혜의 인도하심으로부터 벗어나지 않을 수 없고, 육체의 욕망에 미혹되며 굴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엡1:19) 그러므로 참 신자들은 시험에 들지 않도록 항상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참된 신자라도 깨어 기도하지 않을 때에 그들은 육체와 세상과 사단에 의해 심각하고 흉악한 죄에 끌려가지 않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때때로 하나님의 의로우신 허용에 의해 실제로 끌려가게 됩니다.(마26:41; 살전5:6,17) 성경에 기록된 다윗과 베드로와 다른 성도들의 통탄할 타락이 이 사실의 증거가 됩니다.(삼하11장; 마26장) 제5항 그런 심각한 범죄의 결과 하지만 그런 큰 죄들로 인해 그들은 하나님을 심히 불쾌하게 하고, 죽음의 죄책을 지고, 성령을 슬프게 하며, 믿음의 연단을 중지하며, 그들의 양심에 심각한 상처를 입고, 때때로 얼마동안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분별력을 잃어버립니다.(삼하12장; 엡4:30; 시32:3-5) 그들이 신실한 회개를 통하여 의로운 길로 돌아와서 하나님 아버지의 얼굴이 다시 그들 위에 비칠 때까지 그럴 것입니다.(민6:25) 제6항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택자들이 유실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신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선택에 대한 변치 않는 작정에 따라 소유된 백성이 통탄할만한 타락 가운데 있다고 할지라도 그들로부터 성령을 완전히 거두지 않으십니다.(엡1:11;2:4; 시51:13) 하나님께서는 결코 택자들이 양자됨의 은혜와 칭의의 신분에서 떨어져 나가거나 사망에 이르는 죄나 성령을 대항하는 죄를 짓고, 그분에게 완전히 버림을 받는 영원한 파멸에 그들 자신을 던져 넣을 만큼 그렇게 깊이 가라앉도록 허용하지도 않으십니다.(갈4:5; 요일5:16-18; 마12:31,32) 제7항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택자들이 회개하도록 새롭게 하신다. 무엇보다 택자들이 타락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썩지 않는 중생의 씨앗을 그들 안에 보존하셔서 중생이 사라지거나 버려지지 않게 하십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성령을 통해 그들이 회개하도록 확실하고 효과적으로 그들을 새롭게 하십니다.(벧전1:23; 요일3:9) 결과적으로 택자들은 그들이 지었던 죄에 대하여 경건한 슬픔을 가지고 마음으로부터 애통해 합니다. 즉 중보자의 보혈의 은혜 안에서 죄를 깊이 뉘우치는 마음과 믿음으로 용서를 구하여 얻습니다. 곧 그들은 화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다시 한 번 경험하며, 그분의 긍휼과 신실하심을 찬송합니다.(고후7:10; 시32:5;51:19) 그리고 그들은 그때로부터 더욱 부지런히 그들 자신의 구원을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어 갑니다.(빌2:12) 제8항 삼위 일체 하나님의 은혜는 보존된다. 택자들이 믿음과 은혜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나가지도 않고, 타락에 머물러 마침내 유실되지도 않는 것은 그들 자신의 공로나 힘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과분한 긍휼로 말미암습니다. 택자 자신과 관련하여 믿음과 은혜로부터 떠나거나 타락하거나 유실 되는 일은 쉽게 일어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틀림없이 일어나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관련하여 이 일은 도저히 발생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경륜은 변할 수 없고, 그분의 약속은 실패할 수 없으며, 그분의 작정에 따른 부르심은 철회될 수 없고, 그리스도의 공로와 중보 기도와 보존하심은 폐기될 수 없으며, 성령의 인(印)치심은 결코 좌절되거나 파괴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시33:11; 히6:17; 롬8:30,34; 롬9:11; 눅22:32; 엡1:13) 제9항 이러한 보존하심에 대한 확신 신자들 자신은 구원에 이르는 택자들의 이 보존과 믿음 가운데 있는 참된 신자들의 견인에 대하여 확신할 수 있습니다.(롬8:31-39) 그들은 진정 믿음의 분량에 따라 확신할 수 있는데, 그 확신으로 그들은 교회의 참되고 살아있는 지체가 되고, 항상 지체로 남을 것이며, 죄 용서와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다는 것을 확고하게 믿게 됩니다.(딤후4:8,18) 제10항 이 확신의 근거 이 확신은 말씀에 덧붙거나 말씀 밖에 있는 어떤 개인적인 계시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의 위로를 위하여 그분의 말씀 안에 가장 풍부하게 계시해 놓으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으로 생겨납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상속자인 것을 우리의 영과 함께 증언하시는 성령의 증거에 의해 생겨납니다. 마지막으로 깨끗한 양심과 선행에 대한 진지하고 거룩한 추구에 의해 생겨납니다.(롬8:16,17; 요일3:1,2; 행24:16) 만약 하나님의 택자들이 이 생에서 승리의 획득에 대한 견고한 위로와 영원한 영광의 이 틀림없는 보증을 가지지 못한다면 그들은 모든 사람들 중에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롬8:37; 고전15:19) 제11항 이 확신이 항상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성경은 믿는 자들이 이생에서 육신의 여러 가지 의심과 싸워야 한다고 증언하며, 힘겨운 유혹에 처할 때 이 믿음의 충분한 확신과 견인에 대한 확실성을 항상 맛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증언합니다. 그러나 모든 위로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그들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을 받도록 허락하지 않으시며, 시험과 동시에 또한 피할 길을 주시며, 성령으로 다시 그들 안에 견인에 대한 확실성을 회복하실 것입니다.(고후1:3; 고전10:13) 제12항 이 확신은 경건을 위한 격려이다. 하지만 이런 견인에 대한 확실성은 참된 신자를 교만과 자기만족 가운데 빠지게 만드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겸손, 어린아이와 같은 공경, 참된 경건, 모든 투쟁에서의 인내, 열렬한 기도, 고난과 진리의 고백에서의 정절,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의 변치 않는 기쁨의 진정한 뿌리가 됩니다.(롬12;1) 더 나아가 성경의 증거와 성도들의 삶의 실례들에서 분명히 나타나듯이 이 견인의 유익에 대한 묵상은 신자들을 감사와 선행의 진지하고도 지속적인 실행으로 이끄는 격려가 됩니다.(시56:12,13;116:12; 딛2:11-14; 요일3:3) 제13항 이 확신은 무관심으로 인도하지 않는다. 이 새롭게 된 확신은 타락 후에 회복된 사람들 안에 경건에 대한 무관심이나 태만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확신은 주님께서 미리 준비하신 주님의 규례들을 주의 깊게 준수하도록 그들 안에 더욱더 큰 관심을 일으킵니다.(고후7:10; 엡2:10) 그들은 이 규례들을 준수하는데, 이는 그 가운데서 행함으로 그들의 견인에 대한 확실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그들의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얼굴이 그분의 아버지 같으신 선하심에 대한 그들의 오용 때문에 다시 그들을 외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외면하셨다면 그들은 심히 큰 영적 고뇌로 떨어졌을 것입니다. 진정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그분께서 얼굴을 들어 보시는 것은 생명보다 더 달지만, 그분이 외면하시는 것은 죽음보다 더 씁니다.(시63:4; 사64:7; 렘33:5) 제14항 견인에 있어서 방편들의 사용 하나님께서 복음의 설교로 이 은혜의 역사를 우리 안에 시작하기를 기뻐하셨던 것처럼, 그분은 그분의 말씀을 듣고 읽으며, 말씀을 묵상하며, 말씀으로 권고하고 위협하고 약속하며, 성례를 사용하게 하심으로 이 은혜의 역사를 보존하시고 지속하시며 완성하십니다.(신6:20-25; 딤후3:16,17; 행2:42) 제15항 이 견인의 교리가 사단에게는 미움을 받지만 교회에게는 사랑을 받는다. 참된 신자와 성도의 견인과 그것의 확신에 대한 이 견인의 교리를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이름의 영광과 경건한 자들의 위로를 위하여 그분의 말씀 속에 가장 풍성하게 계시하셨으며, 신자들의 마음에 각인시키십니다.(계14:12) 그 교리에 대해 육신에 속한 자는 깨닫지 못하고, 사단은 미워하며, 세상은 조롱하고, 무지한 사람들과 위선자들은 오용하며, 이단자들은 공격합니다. 한편으로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는 한없이 귀한 보배같이 이 교리를 항상 가장 귀중하게 사랑해 왔고, 확고부동하게 옹호해 왔습니다.(엡5:32) 그리고 그분을 대적하는 자들의 모략을 쓸모없게 하시고 힘을 쓸 수 없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교회가 그렇게 계속 행할 수 있도록 돌보아 주실 것입니다.(시33:10,11) 오로지 이러한 하나님,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만 존귀와 영광이 영원히 있을지어다. 아멘.(벧전5:10,11) 오류에 대한 반박 총회는 성도의 견인에 대한 참된 교리를 해명하고, 다음의 오류를 반박합니다. 1 2 반박 : 이런 생각은 철저히 펠라기우스주의에 속해 있습니다. 이런 교리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들기를 원하지만, 그들을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약탈자로 만듭니다. 이것은 사람에게서 자랑할 만한 모든 근거를 거두어들이고, 이런 유익에 대한 모든 찬송을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만 돌리는 복음의 일관된 가르침과 반대됩니다. 또한 그것은 사도의 증언과도 반대됩니다.“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고전 1:8) 3 반박 : 이런 견해는 그리스도에 의한 칭의와 중생과 끊임없는 보존의 은혜를 무효화시키며, 다음의 사도 바울의 명백한 가르침과 반대됩니다.“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롬5:8,9) 그리고 사도 요한의 가르침과도 반대됩니다.“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요일3:9) 또한 다음의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도 반대됩니다.“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10:28,29) 4 반박 : 사도 요한은 요일 5:16,17에서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지은 사람들에 대하여 말하고, 그들을 위한 기도를 금지 한 후에 곧바로 다음의 말씀을 덧붙입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사망에 이르는 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18절) 5 반박 : 이러한 교리로 인해 이 생애에서 참 신자들의 확고한 위로가 약탈당하며, 로마 교황의 추종자들의 의심이 다시 교회로 끌어들여집니다. 하지만 성경은 특별하고 놀라운 계시로부터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신 특별한 표지와 하나님의 변함없는 약속으로부터 이 확신을 항상 이끌어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특별히 이렇게 선언합니다.“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9) 그리고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요일3:24) 6 반박 : 이 오류는 하나님의 은혜의 효과적인 능력과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의 역사하심을 무시합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분명한 말씀으로 그 반대 입장을 가르치는 사도 요한의 가르침과 반대됩니다.“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3:2,3) 더욱이 그것은 견인과 구원의 확신에도 불구하고 기도와 경건의 다른 연단 가운데 계속 생활했던 구약과 신약의 성도의 실례를 통해서도 반박됩니다. 7 반박 : 마태복음13:20-23과 누가복음8:13-15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이 지속성에 관한 문제 외에도 단지 일시적으로 믿는 자들과 참된 신자들 사이의 세 가지 측면에서의 차이를 분명하게 지적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일시적인 신자는 돌밭에 그 씨를 받은 자이며, 참 신자는 좋은 땅, 곧 좋은 마음에 그 씨를 받는 자라고 선언하십니다. 즉 돌밭의 씨는 뿌리가 없는 반면에, 좋은 땅의 씨는 견고한 뿌리를 낸다고 하셨고, 돌밭의 씨는 열매가 없는 반면에, 좋은 땅의 씨는 끊임없이, 그리고 변함없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8 반박 : 이 교리는 우리를 거듭나게 한 하나님의 씨가 영구적이라는 것을 부인하며, 다음의 사도 베드로의 증언과도 반대됩니다.“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벧전1:23) 9 반박 :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과 반대됩니다.“내가 너(시몬)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눅22:32) 또한 그리스도께서 사도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말을 통하여 믿을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신다고 선언한 사도 요한의 복음과도 반대됩니다.“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소서.”,“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요17:11,15,20) 결 론 도르트 신조는 네덜란드에서 논쟁되었던 다섯 조항에 관한 정통 교리의 분명하고 간결하고 정직한 설명이며, 뿐만 아니라 얼마동안 교회를 어지럽혔던 그 오류에 대한 반박입니다. 총회는 이 설명과 반박이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취해지고, 개혁교회의 고백과 일치한다고 판단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말로 대중을 설득시키기 위해 매우 부적절하게 행동했으며, 모든 진리와 공평과 사랑에 대항하여 행동했음을 명백히 밝힙니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 중에는 개혁교회들이 고백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전심으로 혐오하는 이런 종류의 가르침이 더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도르트 총회는 여기저기에서 모인 비방으로부터 개혁교회의 신앙을 판단하지 말 것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경건하게 부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엄명(嚴命)합니다. 또한 경건한 사람들은 종종 잘못된 신앙 가운데서 인용되거나 문맥에서 벗어나거나 그 교리들의 의미와 반대로 설명된 몇몇 고대와 현대의 교사들의 개인적인 진술로부터도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신자는 이 교회 자체의 공적인 고백과 총회 회원들의 만장일치의 찬동에 의해 확정된 정통적인 교리에 대한 현재의 해명(解明)으로부터 개혁교회의 신앙을 판단해야 합니다. |